뭔가 써보고 싶었고 글감을 찾다가 본 키워드에 언젠가 앤오님과 푼 썰이 생각나서 살을 살짝 붙여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뭐 언제나 그렇지만 90% 정도는 제가 쓰고 싶고 즐겁고 싶어 쓴 글이기 때문에 퀄리티는 부디 양해해주세요.
매번 이 탐사자 커플로 글을 쓸 때면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둘의 관계를 글로 풀어놓자니 앤오님의 캐해석과 제 캐해석이 잘 들어맞는지, 앤오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텐데!
뭐 이런 고민을 계속 하게 되더라구요.
그동안에는 소설 다 쓰고 보여드리고 의견을 묻고 이런 과정을 거쳐왔으나 지금은 의견교환이 불가능한ㅠㅠ 관계로
그냥 제멋대로 쓰고 배 째기로 했습니다 아하하하
부끄러운 글이지만 읽어주시는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날립니다!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로 즐거운 세션을 선사해주신 SIHA님과, 플레이어로 같이 소중한 시간을 보낸 가루비님께 애정 가득 발싸~
만남은 높은 확률로 헤어짐을 동반하기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 한 켠에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처음 연인이 생겼을 땐, 어렴풋이 결혼한 뒤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상상도 하며 즐거워했다. 두번째로 연인이 생겼을 때도, 결혼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오래갈까? 하는 의구심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세번째 연애. 이젠 결혼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만나다 헤어질 수도 있고. 뭐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나면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세번째 만남이, 생각보다 더 많이 특별했다. 하긴 특별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피해갈 수 없는 순수한 악의에 휘말려 둘은 함께 세상의 틈을 엿보았고, 이제 ‘알고 있는’ 사람이 된 그들을 악의는 끊임없이 뒤쫓았다. 그런 일에 휘말리기 전에 이미 지하는 루미에게 깊고도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루미는 지하에게 어렴풋한 호감을 느꼈으니- 그들이 연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위험과 깎여나가는 정신 속에서 서로만을 의지해야 했던 그 사이에 피어난 것은 사랑뿐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관계는 조금 더 끈끈하고, 많이 특별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연애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분명 끝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생각했음에도. 담담하게 이별을 말하는 그 입술을 바라보며 지하는 생각 이상으로 동요했다.
“꼭, 그래야겠어요?”
“응.”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왜 루미가 지금 와서 내게 이별을 말하는 지. 아니, 사실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싫어진 것 뿐인데, 난 그 사실을 직면하는 게 싫어서 다른 이유를 굳이 붙이고 있는 것 뿐 아닐까. 한순간에 혼란으로 뒤덮여버리는 지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루미는 담담했다. 야속할 정도로 차분한 얼굴이라 지하는 문득 눈을 급하게 깜빡여 맺히려는 눈물을 흩어버렸다.
“혹시, 저번 일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역시 내가 의심스러운 거죠. 더 이상, 같이 있기 힘들어진건가요.”
“그런 건 아냐.”
“역시 내가 억지로 끌고 나온 게 잘못이었을까요.”
“......”
“나 생각보다 더 나약한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루미를 정말 많이 사랑했구나.”
가슴께를 부여잡고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내뱉는 지하를 루미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역시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내겐 방도가 없었어요. 난 당신이 살아있길 원했어요. 미안해요, 루미의 뜻을 꺾고 내 멋대로 행동해버려서. 하지만 내 속에 뭐가 남아있어도, 내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더라도,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여기 있어요. 이 마음은 사라지지도, 변질되지도 않았어요. 나는, 사랑하는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주길 바랐어요.”
“...지하야”
루미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 지하는 문득 말을 멈췄다. 조금 머뭇거리던 루미는 고개를 들어 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무섭고 네가 겁났다면- 나는 너 혼자만 내보내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그런 뭔지 모를 것이 된 너를 세상에 풀어놓을 수 없어. 아마 같이 죽었겠지.”
“... 그럼 왜 혼자 남으려고 했어요?”
“그것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쪽지를 봤지? 난 지금 내가 정말 내 자신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아. 변한 네 모습을 봤었으니까, 나는 정상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가지고 있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이지. 언제 다시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나는 겁나지 않는다면서요. 혼자 세상에 내보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안심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설사 루미도 그 뭔지 모를 것에게 물들었다 해도- 내가 걱정없는 만큼 루미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들은 루미의 얼굴이 순간 그늘로 뒤덮였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당황한 지하가 손을 루미의 얼굴쪽으로 뻗는 순간- 루미는 가볍게 손을 들어 그 손길을 제지했다.
“그렇구나. 난 나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나 보네.”
루미의 한탄같은 목소리는 너무 낯설어서, 지하는 뻗어내던 손을 가슴 앞에 모아잡고 당혹한 표정으로 루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루미는 그 자세 그대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그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언제나 바라보던 루미의 얼굴이지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루미는, 신중하고 단호하니까.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없겠지. 마음 한 켠에 체념이 쌓여가는 것을 느끼며 지하는 가만히 루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루미가 다시 입술을 떼었다.
“그래, 난 지금 나 자신도 무섭지만, 너도 무서워. 우리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이것이 언제 어떻게 튀어나와서 우리를 해할 지, 혹은 우리를 통해 세계를 해할 지 짐작도 가지 않아.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 방 안을 조금 더 조사해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루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너는 살아주길 바랬어. 나도 너와 마찬가지야. 네 존재가 살아서 혹시 이 세상에 무슨 해를 끼치게 되더라도, 너만은 살아남아주길 바랬어. 하지만 나 자신은 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했어. 네가 같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나도 사실은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서 결국 너에게 끌려나오고 말았지만.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이 너무 무서워. 내가 너한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것도 두려워. 이기적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난 너와 거리를 두고 싶어.”
“정말... 이기적이네요.”
지하의 눈에서 결국 눈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또륵또륵 흘러내리던 눈물방울은 금세 빗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지하는 입술을 깨물고 울음소리 한 조각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내내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던 루미도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한동안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키던 지하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올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때문에 우리가 벌써 겁을 먹고 헤어져야 하는지. 우리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겪어왔잖아요.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헤어지자니, 루미는 생각보다 겁쟁이었군요. 한번만 더 생각해봐요. 그 방에 있던 자료는 이제 없지만, 알아보면 분명히 단서가 있을 거예요. 같이, 찾아보지 않겠어요?”
루미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따라 고개를 숙였다. 잠시간의 정적 후, 지하의 귓가에 루미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럴 수 없어. 미안해."
지하는 무너져내릴 것 같은 몸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루미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루미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역시, 그렇구나. 어쩔 수 없겠구나. 내내 바라봤으니까, 내내 마음에 담았으니까. 루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 만남이 마지막이겠구나. 안아보고 싶지만 손조차도 잡지 못하게 거리를 벌리는 루미를, 지하는 찬찬히 바라봤다. 눈물이 자꾸 차올라 시야가 흐려졌지만, 계속 떨궈내고 손으로 닦아내면서 하나 하나 눈에 담았다.
서글픈 그 표정을 눈에 담고, 눈가에 보일 듯 말 듯 반짝이는 이슬을 눈에 담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던 입술을 눈에 담고. 시선을 내려- 항상 옆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챙겨줘서,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왔던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다시 눈에 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그 가슴에 손을 올려 꾸욱 누르며 지하는 말했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루미 덕분에 행복했어요. 잘 지내고, 건강하고... 그리고 사랑해요. 뒷 모습은 못 볼 것 같으니까, 먼저 들어갈게요."
작게 끄덕이는 루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고, 지하는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왔다. 쿵- 하고 문이 닫히자, 지하는 그대로 문에 기대며 몸을 미끄러뜨려 차가운 현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삼키며 바깥에 귀를 기울이자, 잠시 시간이 지난 뒤 타박타박 느리게 복도를 걸어 멀어지는 루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지하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그대로 쏟아냈다. 작은 원룸에, 괴로움 가득한 울음소리가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