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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BL] Cool Hot - 여름의 한복판

여름이 되면 내도록 피곤했다. 침대 시트며 이불에 금세 체온이 옮겨가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가뜩이나 옅은 불면증을 끌어안고 사는 규헌은 눅진하게 늘러붙는 침구에 매번 잠을 설쳤다.

"뜨거운 물로 샤워한 다음에 찬 물로 식히면 좀 나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야."

이미 몇번이나 해봤는데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고. 뒷말은 속으로 삼키며 재차 침대 위에 늘어졌다.

열도 많고 땀도 많아 좋은 계절에도 조금만 움직임이 많으면 금세 힘들어지는데, 폭풍같은 더위 한가운데에서는 숨만 쉬어도 지치기 일쑤였다. 식욕도 없고 피로는 태산처럼 쌓여 잠이라도 푹 잤으면 싶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아 그는 현재 매우 예민했고 짜증스러웠다. 한가한 휴일에 굳이 자기 집에 놀러오겠다며 끊임없이 치대는 도하에게 지쳐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번이나 받아내고는 게임기 들려 거실에 방치해둔 채 어떻게든 짧은 낮잠이라도 자보려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벽까지 뜨거워."

"형도 어지간하다. 에어컨을 이렇게 틀었는데도 더워?"

소파에 앉아 게임기에만 집중하던 도하는 문득 고개를 들어 규헌을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저건 도마뱀인데. 벽에 딱 붙인 침대 위에 모로 누워 벽에 손발을 착 대고 있는 꼴이 조금 우스워 입에서 피식 실소가 새었다.

"니가 내 몸뚱아리를 가지고 살아보면 절대 웃을 생각은 안 들걸."

"형은 너무 낡았잖아."

그리고 또 키득키득 웃는 꼴에 대번 규헌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야 너 집에 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축객령이야."

"안그래도 스트레스 받는데 너까지 짜증나게 하지 말고 빨리 꺼지라고."

"형. 말이 심하다?"

기분 상해 날카롭게 내뱉을 법한 말을 빙글거리며 하니 도리어 기운이 빠지는 쪽은 이쪽이다. 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해 혼곤한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고 식욕 없어 충분히 먹지 못해 몸에 힘도 없는데 까마득히 어린 녀석은 능글맞게 제 신경질을 주워 도로 던져대니 딱 죽을 맛이라, 규헌은 제 신경을 살살 긁는 녀석을 완벽하게 무시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멀리 달아난 잠을 찾기 시작했다.

"형."

"..."

"형, 화났어?"

"..."

침대 곁으로 다가드는 인기척이 느껴져 대번에 짜증이 부피를 더했다. 덥다는데, 더워서 힘들어 죽겠다는데 왜 자꾸 다가오고 난리야. 벌써 공기까지 화끈해지는 것 같은 착각에 규헌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켜 뒤돌았다.

"야! 너..."

왜.. 이렇게 가까워?

뒤돌자마자 마주친 얼굴은 말 그대로 코 앞이라, 조금만 더 움직였다간 입술이라도 스칠 판이다. 온 사방에 철벽을 두르고 거리를 두며 스킨십이란 스킨십은 사전차단한다는 소문의 얼음왕자 김도하답지 않다.

"형. 내가 시원하게 해줄까?"

그러곤 조금 더 가까이 들이대는 얼굴에 규헌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했으나 바로 벽에 막혀버렸다.

"아니 뭘 어쩌려고...."

내내 짜증 가득 버럭대던 목소리가 입 안에서 기어들어가 당황한 속내를 가득 드러내 도하는 또 다시 실실 웃음을 흘렸다. 제 앞에 있는 형 너무나도 하찮고 귀여워서.

"왜 그렇게 겁먹었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코가 스칠 듯 말듯 한 거리에서 눈을 내려깔아 자신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도하를 보며 규헌은 패닉에 빠졌다. 뭐야, 왜 이렇게 자꾸 다가와. 야, 너무 가깝잖아. 와중에 얼굴은 세상 잘났네. (이 말은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고 속으로만 뱉었다.) 아니 도하야 나한테 왜이러냐 진짜아아- 진짜 잡아먹힐 것처럼 잔뜩 움츠러들어서 고장이 나버린 형을 찬찬히 감상하던 도하는 허리를 세워 거리를 벌렸다. 제 습관처럼 벌려두는 타인과의 거리에 저 누구에게나 으레 그렇겠거니 생각하는 이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이 예외인 것 한 번 알아채는 일이 없이 둔감했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라 치면 마치 본인이 침범해 들어온 마냥 얼굴에 미안함을 담고 물러나는 사람이었으니. 그래도 오늘은 그냥 미는대로 밀려나기는 싫었다. 여지껏 손도 한 번 못 대 본 사람, 핑계 갖다붙이며 끌어안기 좋은 날이라.

얼굴은 뒤로 물렸지만 그 대신 손을 내어 자그마한 손을 빈틈없이 감싸쥐었다. 곧바로 잡아빼려 움찔하던 손이 부지불식간에 멈춰섰다.

"야... 김도하 너... 얼음왕자라더니... 이런 뜻이었어?"

"아닐걸?"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형도 눈깔이 있으면 사람들 나한테 손끝도 못대는 거 봤을텐데 이래서 얼음왕자겠어? 하긴, 그렇네. 그렇지.

그런데 나는 왜..? 하며 응당 따라붙을 질문은 전혀 떠올리지도 못한 채 규헌은 멍한 눈길로 제 자그마한 손을 덮은 도하의 유난히 커다란 손을 내려다보았다. 도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이 사람 지금 나한테 닿아있다는 것에 의문가질 여유조차 없구나. 천천히 다른 쪽 손도 뻗어 남은 손을 잡으니 이번에는 꼬물꼬물 움직여 깍지를 껴 온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손을 빼내자 칭얼거리는 것처럼 달라붙어와 도하는 끝내 웃어버렸다.

"형, 형.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제 냉한 손에 달라붙어 전해지는 규헌의 뜨거운 체온이 제게 이다지도 만족스러우니.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마냥 손발이 화끈거린다, 뜨끈하고 불편해 잠들기 힘들다 불평해대는 이 사람에게도 제 서늘한 체온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자자, 형. 많이 피곤하다며."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그 옆에 따라 누우니 언제 도마뱀 흉내를 내었냐는 것 마냥 벽과는 내외하며 저에게 달라붙어왔다. 내내 사이에 그어두었던 보이지 않는 선은 어느새 지워버렸는지, 첫 스킨십인 것도 잊은 채 과하게 몸을 붙여오는 규헌을 품안에 끌어안으며 도하는 미미하게 떠오르는 죄책감을 내리눌렀다. 이거 심신미약 상태인 상대를 제 멋대로 요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이 사람 잠이 무척이나 급하니 나혼자만 좋은 일은 아닐거라는 변명을 덕지덕지 붙이며 도하는 이미 반쯤 눈이 풀린 규헌의 등을 가만가만 토닥였다.

"신기해.."

"뭐가?"

"사람 피부는 생각보다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구나."

벽에 손을 갖다붙일라 치면 금세 열이 옮겨붙어 뜨거워지니 매번 이곳저곳으로 손을 옮겨대야 해 결국 편안한 잠은 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곤 했다. 침대 시트도 마찬가지라 이곳저곳으로 구르며 차가운 곳에 골라눕고 싶은데 벽에 손발을 갖다대려면 또 그조차 여의치 않아지니까. 손에 차갑게 달라붙은 타인의 피부는 제법 시간이 지남에도 서늘함을 유지해, 이렇게 편안하게 체온을 식힌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처음 아닐까?

이런 스킨십, 괜찮은가? 작게 피어오르는 의문은 가볍게 무시한 규헌은 제 양 다리 사이에 서늘한 도하의 다리를 끼우고 살짝 드러난 맨허리쯤에 손을 올린 채 그대로 수마에 몸을 맡겼다. 금세 잠이 들어버린 얼굴을 내려다보며 도하는 빙그레 웃었다.

"정말 대책없는 형이네..."

일년 사계절 냉한 제 피부가 고맙긴 또 첨이라. 올 여름 신나게 형을 제 품속에 끌어안을 생각에 흐뭇해진 도하는 재차 그를 추슬러 제 몸에 꼭 맞게 챙겨넣고 잠을 청했다. 형만큼이나 저도 형의 따끈한 체온이 기꺼워, 햇빛이 찬연한 낮임에도 깊이 잠들 것 같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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